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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데스크 칼럼- 정숙공(貞肅公)

NIB 기자 작성일  -   2017년 0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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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감사 옴부즈만, 공학박사   류 정 수
 
 무령군 유자광의 아버지 유규는 남이 장군의 고조부인 남재의 여동생(의령 남씨 부인)과 유두명 사이에 난 아들인데 유두명이 태종 1년(1401년)에 좌천되어 밀양 부사를 지낼 때 태어났다.


 유규는 7살에 할아버지(유면)를 여의고, 8살에는 아버지(유두명)를 여윈 채 홀어머니(의령 남씨 부인) 슬하에서 자라다가 26살인 1426년(세종 8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조선왕조실록의 유규의 졸기를 원안대로 옮겨본다.

 

성종 4년(1473년, 계사년) 2월 10일(신미) 


 지중추부사 유규의 졸기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유규(柳規)가 졸하니, 철조(輟朝)하고 사부(賜賻)와 조제(弔祭)를 상례(常例)와 같이 하였다.


 유규는 자를 경정(景正)이라 하고, 본관(本貫)은 영광(靈光)이며, 대언(代言) 유두명(柳斗明)의 아들이다.


 음관(蔭官)으로 계성전직(啓聖殿直)에 보임(補任)되었으며, 선덕(宣德)병오년(1426년)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관례에 따라 권지훈련녹사(權知訓鍊錄事)로 분속(分屬)되었고, 군기녹사(軍器錄事), 선공직장(繕工直長), 진주판관(晉州判官), 사헌감찰(司憲監察), 황해도경력(黃海道經歷), 원평 부사(原平府使), 평양소윤(平壤少尹), 한성소윤(漢城少尹)을 지냈다. 


 경태(景泰) 계유년(1453년) 사헌부 장령에 제배(除拜)되었다가 언사(言事)로 권귀(權貴)에게 미움 받아 군기부정(軍器副正)으로 좌천되었다.


 갑술년(1454년)에 사헌부 집의에 오르고, 사복시윤(司僕寺尹)으로 옮겼다가 곧 군기감정으로 옮기고, 또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에 올랐다. 


 을해년(1455년)에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가 되고, 형조 참의로 옮기고, 황해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병자년(1456년)에 갈려서 호조 참의에 제배되었다. 


 정축년(1457)에 가선대부(嘉善大夫) 경주 부윤에 올랐는데 송자(訟者) 중에 뇌물을 쓴 자가 있으므로 노하여 형장(刑杖)을 치다가 죽인 일이 있어 드디어 좌죄(坐罪)되어 파직되니 남원에서 살면서 오랫동안 벼슬하지 않았다. 


 그 아들 유자광이 익대공신(翊戴功臣)이 되자 예종(睿宗)이 특별히 가정대부(嘉靖大夫) 행첨지중추부사(行僉知中樞府事)를 제수(除授)하였는데 유규가 와서 사은(謝恩)한 지 한 달 남짓 만에 늙었다 하여 돌아가기를 청하니 또 특별히 자헌대부(資憲大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제수하여 전리(田里)로 돌아가게 하여 그 뜻을 이루어 주고 이어서 사는 고을에 명하여 녹(祿)을 주게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졸(卒)하니 나이가 73세였다.


 정숙(貞肅)이라고 시호(諡號)하니 절조(節操)를 굳게 하여 간사(幹事)하는 것을 정(貞)이라 하고, 심지(心志)를 지켜서 결단(決斷)하는 것을 숙(肅)이라 한다.


 아들 유자환과 측실(側室)에서 낳은 아들 유자광이 있는데 유규가 집에서 엄숙하여 자제를 대할 때에도 반드시 관대(冠帶)를 갖추고 만났다.
 유자환, 유자광이 귀현(貴顯)하게 되었으나 언사(言辭)나 용색(容色)으로 그런 표정을 지은 적이 없었으며, 가는 곳마다 청렴하고 엄숙하다고 드러나게 칭찬받았다.

 

 유규는 경주 부윤으로 뇌물 쓴 자를 벌하다가 숨지게 한 죄로 벼슬길을 물러났다. 그 아들 유자광이 익대공신이 되어 예종이 특별히 벼슬을 주었는데도 한 달 남짓 만에 늙음을 핑계로 고향으로 돌아갈 정도로 강직한 이였다.


 또한 자제를 대할 때 관대를 갖출 정도로 엄했고, 두 아들이 잘 되었어도 그것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을 정도로 청렴하고 엄숙했다고 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유규는 여산 송씨 부인의 몸에서 아들 자환을 얻었으나 부인이 젊은 나이에 죽자 한 동안 혼자 지내다가 황해도 도사로 나가기 3∼4년 전 여산 송씨 몸종인 보령 최씨를 측실로 들여 39세에 유자광을 얻었다. 이때 보령 최씨 부인의 나이는 30세였고, 그 후 자형과 자정, 두 아들을 더 얻었다.

  • NIB 기자 작성일17-04-1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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